공작가에서 일하는 눈먼 하녀에 빙의했다.내가 모시는 주인은 이 소설의 남주로, 희귀병을 앓고 있다.빛이 닿으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는 저주 같은 병이다.하루 종일 어둠 속에 갇힌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건, 보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는 나뿐.“너, 내 등가죽을 아예 벗겨 버릴 셈이야?”“이렇게 박박 밀어야 시원하다구요.”깜깜한 데서 씻어야 하는 남주를 대신해 때도 밀어 주고,“자, 걸음 수를 세며 한번 걸어 보세요.”……쿵! ……쿵!“도련님, 혹시 방향 감각에 문제라도 있으세요?”벽에 부딪히지 않고 걷는 법도 가르쳐 주고,“우리 도련님, 피부만큼은 뽀샤시하겠다. 햇빛을 안 보니까.”“……놀리는 거야?”성심성의껏 위로도 해 주었는데.어느 날부터 날 향한 남주의 숨결이 달라지기 시작했다.“잘 만져 둬.”그가 내 손을 끌어다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다른 얼굴은 기억 못 해도, 이 얼굴만큼은 절대 잊어선 안 돼.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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